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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전시후기] Heidi Bucher 하이디 부허 : 공간은 피막,피부 도슨트 해석 아트선재센터

by 딥둡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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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부허의 전시를 보러 아트 선재센터에 방문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진행하는 전시들은 공간을 베이스로 하는 전시가 많이 없었고, 포토존이나 영상매체를 활용한 전시가 많았는데, 이렇게 거대한 설치가 있는 국내 전시는 오랜만에 보아서 설레었습니다.

아트선재센터

 

주소 :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87
운영시간 : 12:00-19:00 (입장은 폐관 30분 전까지)
관람료 : 만 25세 이상 10000원
1층 내부에는 락커와 화장실
(이용료는 무료, 전시 관람자만 사용가능)
주차불가


 

하이디 부허 : 공간은 피막, 피부

 

1층에서는 다른 전시가 진행중이었고, 하이디 부허의 전시는 2층, 3층에서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후 3시쯤 방문했는데, 우연히 도슨트가 진행되고 있는 시간과 맞아 설명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작품이 많이 걸려있었지만, 대부분 작품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어떤 작품인지, 그리고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인지 알아보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꼭 도슨트 설명을 같이 들으며 전시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이디 부허(Heidi Bucher)는 스위스의 네오 아방가르드 작가로, 1926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공간과 건축부터 시작해 텍스타일, 드로잉, 그리고 퍼포먼스까지 다양하고 넓은 작품활동을 하며 1993년도에 생을 마감했는데, 안타깝게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녀의 작품이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 후에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큰 전시를 진행하게 되며 회고전도 하게 되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하이디 부허의 모습, 건물의 표면에 거즈를 덮고 라텍스를 바른 후 떼어내는 모습입니다. 이 작업과정을 '스키닝' 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 영상을 하나의 퍼포먼스라 생각하며 찍었다고 합니다. 영상 속 거즈를 떼어낼 때 그녀가 입은 옷, 구도, 신은 신발까지 하나하나 전부 계획된 퍼포먼스 였다고…

 

 

스키닝(Skinning) 이라는 이 기법은 그녀가 지금까지 겪어온 사회에 피부를 만들어주고, 껍질을 벗겨내어 탈피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스위스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애 딸린 이혼녀로 살아온 그녀는 여성으로써 그녀가 느낀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을 많이 진행했습니다.

처음 하이디 부허가 스키닝 기법을 시도한 공간은 자신의 집, 그중에서도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서재 공간입니다. 아무래도 건물에 라텍스를 바르고 떼어내는 과정을 하다보면 건물이 손상되기 마련이라, 자신의 집이나 버려진 건물에서 주로 작업을 진행 했다고 해요. 그녀가 작품을 만들면서 건물에 피부를 생성해 주고, 그 표면을 벗겨내며 부드러운 속살만이 남게 되는데 이는 곧 해방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내부는 3인까지 입장가능하다.

전시 공간 중 가장 커다란 이 작품은 빈스방거의 정신과 병원을 스키닝 한 작품입니다. 이 병원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히스테리아”라는 정신병으로 분류되어 제대로 된 상담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실에 갇혀 지냈던 역사가 있는 공간입니다.

히스테리아는 그리스어로 여성의 자궁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원인 모를 신체적 통증을 호소하는 여성에게, 사람들은 자궁을 방치했기 때문이라 치부하고 ‘히스테리아’ 라는 병명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아픈 역사가 있는 공간을 하이디 부허는 스키닝 함으로써 차별 받고 고통받았던 여성들에게 해방을 주려 한 것 같네요.

 

 

이러한 스키닝 작업을 한 천들은 돌돌 말려 전시관으로 온다고 합니다. 사실 이 작품들은 얇은 소재의 거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보존이 될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관람하는 것이 좋다고 도슨트분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작품에도 귀여운 스토리가 있었는데, 당시 장교와 연애를 하던 연애편지가 이 드레스 뒤에 붙어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 손을 대지 못해서 그 편지를 볼수 없다고 했는데 저는 아쉬워서 살짝 들떠 있는 부분을 보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관람 당시 이 천의 중간 부분이 살짝 주름이 가 있었는데, 장교의 후손 분들이 뒷부분을 들어서 본 흔적이라고 하네요.

 

 

그녀가 할머니를 추억하며 제작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이름은 <물고기는 잔다>. 마치 배게 위에 누운 물고기가 자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도슨트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어떤 작품인지 이름도 알지 못했을 텐데, 스토리까지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교하게 본떠진 문짝과 창문들을 자세히 보면 손잡이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 피부를 떼어낸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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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부허의 전시 3층의 입구입니다. 2층과 3층의 전시는 각각 공간과 몸의 섹션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3층의 전시 주제는 ‘몸’이네요. 입구에는 자신의 작품인 <잠자리의 욕망>을 입고 있는 하이디 부허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입니다. 하이디 부허는 자신의 일생을 잠자리에 투영하였는데, 이 옷이 바로 잠자리의 형태를 본 떠서 만든 날개옷 입니다. 마치 한 거대 잠자리가 변태 과정을 거쳐 탈피한 껍데기 같기도 한 모습입니다.

잠자리는 아가미를 단 채 유충으로 아주 오랫동안 물속에서 생활하다, 변태 과정을 거쳐 하늘을 난다고 합니다. 하이디 부허는 이런 잠자리의 일생을 자신의 작품에 투영하여 많이 녹여내었고, 그중에 대표적인 작품으로 <잠자리의 욕망>이라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이름을 영어로 표현한다면 환희라는 뜻도 있어서, 탈피 후 하늘을 나는 잠자리의 환희와 즐거움도 상상해 볼수 있다는 설명이 재미 있었습니다.

잠자리의 욕망이라는 작품은 이번 전시가 끝난 뒤 로마의 미술관 소장품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되면 다시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니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랜딩스 투 웨어 (Landings to wear)는 의상과 조각을 넘나드는, 입을 수있는 혁신적인 조각상입니다. 조각은 딱딱하고, 견고하다는 고정관념을 깬 아방가르드적인 작품입니다. 의상쪽에서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하네요.

하이디 부허는 이전에 학부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했었기 떄문에, 그 영향을 받아 이러한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요? 이 옷 조각상들은 스티로폼같은 재질로 작업되어 부드럽게 입을 수 있고, 어떤 자세한 묘사 없이 기하학적인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표면에는 자개를 발라 반짝거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변에서 이 조각상을 입은 채 가족들과 퍼포먼스를 하는 영상을 보면 태양 빛에 비춰지면서 아름답게 반짝이는 작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 귀엽게 꿈틀거리는 조각상들의 모습입니다. 전시 한켠에는 이러한 조각 작업 중 바디랩핑 작품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도 있으니, 체험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저도 체험 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이 불편하고 부드럽다기 보다 견고하고 딱딱하더군요… 입기 힘들었습니다.

 

 

전시의 한쪽에는 그녀가 자개를 활용한 재질을 실험한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잠자리의 욕망>이나 여성옷을 활용한 작품들을 보면 표면에 자개처리가 되어 반짝 거리는 재질감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레이어감이 느껴지는게 살짝 징그러울 정도로 곤충의 표면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 전시 섹션은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녀가 흐르는 물과 폭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벽면에 걸려있는 사진은 그녀가 스키닝 한 작품을 공중으로 띄운 퍼포먼스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건물에 피부를 만들어주고, 그 피부를 벗겨내고 공중으로 띄우면서 그녀는 탈피한 잠자리 처럼, 사회의 불필요한 피막들을 하늘로 날려보냈습니다. 지금 그녀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마 여성의 해방과 자유를 뜻하는 그녀의 작품들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일까요?

최근 본 국내 전시들 중 가장 생각할 거리가 많고 인상적인 전시입니다. 6월 25일까지 전시가 진행되며, 이번 전시가 끝난 후에는 다시 스위스로 모든 작품이 이송된다고 하니, 꼭 관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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